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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학교폭력, 가해자의 망각, 복수)

by exceptional19 2026. 7. 4.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한 복수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년 전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들을 찾아가 응징한다는 설정 자체가 장르물의 공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건 복수 이야기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어떻게 잠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돼지의 왕은 그런 의미에서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작품이었습니다.

학교폭력: 2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트라우마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희미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리고 이 드라마가 정확히 짚어내는 것처럼, 그건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황경민은 중학교 시절 일진들에게 극심한 괴롭힘을 당합니다. 성인이 된 뒤 겉으로는 평범한 회계사로 살아가지만,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단체 사진 한 장에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이 장면이 저한테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사진 속 돼지 가면 하나에 표정이 무너지는 모습이,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지를 말보다 훨씬 선명하게 전달했습니다.

여기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PTSD란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이 현재까지도 플래시백, 과각성, 회피 행동 등의 형태로 반복적으로 재경험되는 심리적 장애를 말합니다. 황경민이 가해자 중 한 명인 남기철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극도로 냉정하게 행동하는 장면, 그리고 정종석이 총기를 탈취당한 뒤 환각 증세를 보이는 장면은 모두 PTSD 반응의 묘사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자의 심리 후유증에 대한 연구는 이미 국내에서도 꾸준히 축적되어 왔으며, 피해자의 상당수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인 관계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드라마는 또 하나의 섬세한 지점을 건드립니다. 박민주가 남편 황경민을 위해 졸피뎀을 처방받고 계획적으로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졸피뎀이란 수면 유도 효과를 가진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처방 없이는 구하기 어렵지만 여러 병원에서 분산 처방받으면 다량 확보가 가능하다는 허점이 드라마 속에서 현실감 있게 묘사됩니다. 박민주가 자신이 아닌 남편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 그것도 철저하게 계획된 방식으로 실행한다는 설정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피해자 가족이 겪는 2차 피해의 무게를 담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망각, 피해자의 기억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많이 멈칫했던 장면은 복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가해자들이 황경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장면이었습니다.

황경민은 성인이 된 가해자들과 하나씩 마주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억 안 난다", "장난 좀 친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그게 그렇게 큰 일이냐", "별거 아닌 거 가지고"라고 말하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보고됩니다. 가해자에게는 기억조차 희미한 일상적 행동이 피해자에게는 삶을 통째로 바꿔버린 사건이 된다는 것, 이 비대칭성이 이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황경민의 대사 "인간에게 망각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저주야"는 그래서 단순한 명대사가 아니라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입니다. 피해자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고, 가해자는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 구조가 복수의 동력이 됩니다.
이 드라마는 '폭력'보다 '기억의 비대칭'을 더 무섭게 그려냅니다.

드라마가 묘사하는 학교폭력의 양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직접적인 신체 폭력과 성적 수치심 유발 행위
  • 집단 따돌림 및 방관자의 암묵적 동조
  • 교사와 학부모의 계층적 권위가 가해 구조를 강화하는 방식
  • 피해자 부모에게까지 전이되는 수치심과 굴욕

이 중 저한테 가장 오래 남은 건 네 번째였습니다. 황경민 아버지가 학교에서 무릎을 꿇고, 김철이 그 자리에서 짐승처럼 맞는 장면은 폭력이 아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어른들이 만든 계층 구조가 교실 안으로 그대로 복사된다는 것, 이걸 드라마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단순 복수극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이란 학생 간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의 행위를 포함합니다. 여기서 학교폭력예방법이란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교육을 목적으로 2004년 제정된 법률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피해 학생의 즉시 분리 조치 등이 강화되었습니다(출처: 교육부).

복수는 과연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황경민의 복수 장면들을 보면서 시원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원함을 느끼는 자신이 좀 무서웠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이 드는 작품은 드문데, 그건 드라마가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이 복수에 감정이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돼지의 왕은 그 점을 정확히 계산하고 있습니다. 복수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황경민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김철이 어떤 식으로 희생되었는지, 그리고 아무도 이들을 보호해주지 않았는지를 충분히 목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응징당할 때 관객은 쾌감과 동시에 불편함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복수극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이기는 카타르시스로 마무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황경민이 복수를 실행할수록 그 자신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정종석에게 "괴물? 그게 내가 원하는 바야"라고 말하는 황경민의 대사는 복수가 피해자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라마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그 지점이 저한테는 단순한 장르 드라마와 이 작품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복수의 경로보다 "왜 학교와 사회가 이걸 막지 못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더욱 강력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의 후유증을 성인 이후까지 끌고 가서 현실적으로 보여준 점, 그리고 가해자들의 망각과 피해자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정면으로 다룬 점은 오래 기억에 남을 성취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저는 계속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나라면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이 제대로 된 일을 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필요한 지금, 이 드라마는 그 불편한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게 만드는 드문 작품입니다.


참고: https://youtu.be/z2LQ3IjWBjM?si=mC2QsOx-2g35Vv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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