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SNS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너도나도 칭찬 일색으로 올리는 걸 보고, 오히려 반사적으로 의심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넷플릭스를 켜서 두 회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박해영 작가가 4년 만에 들고 나온 신작, 넷플릭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리뷰입니다. 이 작품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지금 이 시대가 왜 이렇게 피곤한지를 조용하고 날카롭게 짚어내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가 터진 이유: 사회적 공감과 SNS 시대의 박탈감
이 드라마가 단순히 "잘 만든 드라마"로 그치지 않고 사회 현상처럼 번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이유가 드라마 바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 구조적으로 심화되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자신의 절대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느끼는 결핍과 열등감을 말합니다. SNS가 일상화된 이후 이 감각이 증폭되는 속도는 이전과 차원이 다릅니다. 성공한 삶의 단면만 골라서 보여주는 플랫폼 특성상,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SNS 피드를 한 번 내리다 보면 여행, 성과, 수상, 이직 소식이 연달아 나오고, 어느 순간 제 일상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지 않습니까.
여기에 성과 중심 문화와 끊임없는 비교까지 더해집니다. 취업, 승진, 연봉, 집값처럼 숫자로 평가받는 기준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렇게 생긴 불안은 자연스럽게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드라마 제목이 유독 크게 와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특정 세대나 직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마주하는 감정입니다.

황동만 캐릭터 분석: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이유
주인공 황동만은 20년 동안 영화를 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감독 지망생입니다. 저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찌질하고, 자기 합리화가 심하고, 주변 사람 기분을 묘하게 다 잡치게 만드는 캐릭터입니다. 김치찌개집에서 김치찌개를 싫다고 하는 장면은 코미디인데도 짜증이 날 정도로 사실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제작자 최대표가 황동만에게 "주인공한테 파워가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쓴 사람 본인한테 그런 게 없기 때문"이라고 날리는 장면에서 저는 멈칫했습니다. 이 대사는 단순한 비평이 아닙니다. 창작자에게 있어 자기 서사(self-narrative)가 결국 작품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자기 서사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이야기하는가에 관한 내면의 구조를 의미합니다. 황동만이 20년 동안 왜 안 됐는지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서사의 빈곤 문제일 수 있다는 겁니다.
기획 PD 은하가 옥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심리학에서 자기 거리두기(self-distancing)와 맞닿아 있습니다. 자기 거리두기란 자신의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 3인칭 시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인지 전략으로, 과도한 자기 비판이나 감정적 압도 상태에서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은하가 그 장면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인 이유가 그래서일 것입니다.
황동만이 사용하는 감정 측정 어플, 즉 자신의 당황과 불쾌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기기는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외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치라고 느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감정과 사고 과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드라마는 이 기기를 통해 "나는 지금 억울하다"는 감정을 단순한 하소연이 아닌, 수치로 증명하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를 포착합니다.
황동만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 채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어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입니다. 우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타인을 비웃기보다, 언젠가 저런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가 공감을 얻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공이 아닌 실패와 좌절을 주인공으로 세운 서사 구조
- SNS에서 보이지 않는 찌질함과 비참함을 전면에 배치
-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인식적 안도감(cognitive relief) 제공
- 무가치함을 비극이 아닌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제시
이 드라마가 남긴 의미: 무가치함을 바라보는 시선
박해영 작가의 전작 나의 해방일지가 인간의 권태와 탈출 욕망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더 이전 단계, 즉‘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비교, 실패, 관계 속 상처가 어떻게 사람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드는지 꽤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쉽게 소비되는 위로의 언어를 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드라마가 위로를 준다기보다“네가 느끼는 게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시켜준다는 점입니다. 그 차이가 꽤 큽니다. 우리는 종종 괜찮지 않은 마음을 애써 감추며 ‘내가 유난인가',‘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를 스스로 되묻곤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내 감정을 해결해주지 않더라도, 그 감정 자체를 이해 가능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순간 이상하게 숨이 조금 쉬어집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는 듯했습니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이러한 드라마 콘텐츠의 기능은 주목할 만합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건복지부 이 수치는 황동만의 이야기가 결코 특별하거나 먼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불안, 무력감, 자존감의 흔들림은 생각보다 훨씬 보편적인 경험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자신을 증명하고, 비교하고, 때로는 자신의 무가치함과도 싸워야 하는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더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3회까지만 봤지만 이미 계속 보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단순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어쩌면 내 안에도 비슷한 감정이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불편하지만 쉽게 외면할 수 없는 그 감각, 때로는 그런 작품이 오래 남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나는 과연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작품입니다. 쉽게 답을 내리거나 위로를 건네기보다, 그 질문 자체를 외면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다음 화를 보게 되는 이유는 결말이 궁금해서라기보다, 그 질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확인하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사회적 텍스트에 가깝습니다.